《BNR TALK》 당신이 삼킨 말, 몸은 알고 있다.
《 당신이 삼킨 말, 몸은 알고 있다. 》
“괜찮아요” 뒤에 숨겨온 몸의 신호와 말하지 못한 욕구, 반복되는 관계의 이유를 읽는 BNR Salon 이야기.
《 우리는 왜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아요”라고 말할까요?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습관처럼 대답했습니다.
“잘 지내요.”
“그냥 좀 바빠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고, 힘들다고 말하면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저 스스로도 무엇이 힘든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특별히 큰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자꾸 피곤했고,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말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쉬는 날에도 마음 한편은 계속 일하고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금세 불안해졌습니다.
몸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런 적이 있나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미 피곤했던 날,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집에 가고 싶었던 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결국 “제가 할게요”라고 말한 날.
만나자는 연락이 반갑지 않은데도 미안해서 약속을 잡고, 정작 약속 당일에는 이유 없이 몸이 무거웠던 날. 가까운 사람의 사소한 말에 날카롭게 반응한 뒤 “내가 왜 그랬지?”라며 혼자 자책했던 밤.
몸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저는 제 성격부터 의심했습니다.
“내가 요즘 너무 예민한가?”
“왜 이렇게 의욕이 없지?”
“다들 이 정도는 견디는데 나만 약해진 걸까?”
피곤하면 커피를 한 잔 더 마셨고, 무기력하면 새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더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쉬어야 할 때조차 ‘잘 쉬는 방법’을 찾아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몸은 제발 멈춰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저는 다시 잘해낼 방법부터 찾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타인의 표정보다 자신의 몸에 더 둔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표정은 빠르게 알아차립니다. 동료의 기분이 좋지 않은지,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연인의 말투가 평소와 다른지 금세 눈치챕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는 둔합니다. 어깨가 굳어도, 턱에 힘이 들어가도, 숨이 얕아져도 “지금은 바쁘니까”라며 지나칩니다.
그렇게 미뤄둔 신호가 어느 날 짜증이나 무기력, 눈물이나 관계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을 돌아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어머, 이거 내 얘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잠시 몸을 살펴봐 주세요. 어깨가 올라가 있지는 않은지, 턱과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숨을 편안하게 쉬고 있는지요.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그저 이렇게 물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 나는 정말 괜찮은가? 지금 내 몸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 다른 사람의 욕구는 읽으면서, 왜 내 마음은 몰랐을까요?》
저는 20년 넘게 IT 엔지니어와 기술 컨설턴트, B2B 세일즈와 마케팅, 브랜딩의 현장을 지나왔습니다.
오랫동안 고객을 만나며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제나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말과 다른 욕구를 품고 있습니다.
고객은 가격을 이야기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선택이 실패하면 어떡하지?’를 걱정합니다. 기능을 묻지만 실제로 원하는 것은 더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일 수 있습니다.
계약 조건을 따지는 말 뒤에는 책임지고 싶지 않은 불안이 숨어 있기도 하고, 유명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행동 뒤에는 자신의 판단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도 합니다.
세일즈와 마케팅을 하며 저는 말보다 표정을 보고, 질문보다 망설임을 읽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객이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무엇을 원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지를 살피는 일이 익숙했습니다.
몸에 관한 불편함보다 그것을 말하는 일이 더 어려웠습니다.
여성 섹슈얼 웰니스 브랜드 Womanizer와 pjur를 담당하면서 이 질문은 더 깊어졌습니다.
자신의 몸에 관해 질문하면서도 목소리를 낮추는 사람, 불편함을 이야기하면서도 민망한 듯 웃는 사람, 오랫동안 참아온 통증과 성 건강, 친밀감의 문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났습니다.
“이런 걸 물어봐도 될까요?”
“제가 이상한 건 아니죠?”
“다른 사람들도 이런가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보다 그 불편함을 말하는 일을 더 어려워했습니다. 몸에 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면 이상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단어 대신 웃음으로 넘기고, 질문 대신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기 어려운 몸과 욕구의 문제는 성적인 주제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요. 우리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존중받고 싶지만 “별일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쉬고 싶지만 “조금만 더 하면 돼요”라며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사랑받고 싶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서운하지만 먼저 말하면 지는 것 같아 상대가 알아주기만을 기다립니다.
도움을 받고 싶지만 무능해 보일까 봐 혼자 해결하고, 거절하고 싶지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또 한 번 참습니다.
타인의 욕구는 읽었지만 제 욕구에는 서툴렀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하지 못한 욕구를 읽는 데 익숙했던 저도 정작 제 몸과 마음에는 서툴렀습니다.
고객에게는 “무엇이 불편하신가요?”라고 물으면서 저 자신에게는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습니다.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이 먼저였고, 쉬고 싶어도 책임감이 더 중요했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제가 하면 빨라요”라고 웃었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혼자 해결하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유능한 사람은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은 끝까지 견뎌야 하며,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욕구는 읽으면서 제 욕구는 자꾸 뒤로 밀어두었습니다.
그 질문을 저 자신에게 돌려주기까지 23년이 걸렸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따라 일해왔습니다.
사람은 왜 말과 다른 선택을 할까?
무엇을 원하면서도 왜 표현하지 못할까?
말하지 못한 욕구는 행동과 관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 질문을 저 자신에게 돌려주기까지 23년이 걸렸습니다.
▶ 나는 왜 내 몸이 힘들다는 말을 듣지 못했을까? 나는 무엇을 원하면서도 계속 삼키고 있었을까?
그 질문에서 BNR Salon이 시작되었습니다.
《 몸은 생각(뇌)보다 먼저 반응합니다. 》
BNR은 Body·Needs·Relationship의 약자입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서 출발해 그 뒤에 있을 수 있는 욕구를 살펴보고, 그 욕구가 관계와 삶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연결해보는 자기이해의 관점입니다.
생각이 답을 찾는 동안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머리부터 사용합니다.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상황을 분석하고 이유를 찾느라 분주합니다. 하지만 생각이 답을 만드는 동안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굳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면 턱과 목에 힘이 들어갑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면 심장이 빨리 뛰고, 가족 모임을 생각하면 이유 없이 속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유난히 지치지만,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긴장이 풀리고 깊은숨이 나옵니다. 저도 예전에는 몸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어깨가 아프면 자세가 나빠서라고 생각했고, 잠이 오지 않으면 커피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몸이 무거워져도 단순히 피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이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왜 하필 그날, 그 사람, 그 상황에서 몸이 더 긴장했을까?’를 함께 묻게 되었습니다.
몸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알려주는 정답지가 아닙니다.
같은 두통과 피로에도 다양한 신체적·환경적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증상이 지속되거나 일상을 어렵게 한다면 반드시 의료진이나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BNR에서 몸을 살펴본다는 것은 스스로 진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상태를 더 이상 무심히 지나치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몸을 너무 늦게 배우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몸을 너무 늦게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학교에서는 성적을 올리는 방법을 배웠고,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리더가 되는 법도 끊임없이 배웁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할 때 어떻게 알아차려야 하는지, 피곤하다고 말해도 되는지,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긴장한 몸을 이끌고 계속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책임질 일이 많아진 사람은 유능하다는 평가를 지키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돌보느라 자신의 피로를 뒤로 미루고, 나이가 들며 수면·체력·통증·감각·성욕이 달라져도 변화한 몸을 이해하기보다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려고 애씁니다.
달라진 몸은 실패한 몸이 아닙니다.
예전보다 쉽게 지친다고 해서 약해진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달라진 몸은 실패한 몸이 아닙니다. 지금의 삶이 너무 빠르거나, 맡은 역할이 너무 많거나, 오랫동안 참아온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일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지금 어디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누구를 만날 때 숨이 편안해지는지, 어떤 부탁을 받았을 때 몸이 먼저 움츠러드는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몸은 정답을 알려주는 판정자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나게 하는 가장 빠른 신호입니다.
《 "싫어, 쉬고 싶어, 알아줬으면 좋겠어." 》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나면 그다음 질문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우리는 해야 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원하는 것을 말하는 데는 서툽니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원하는 것을 말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으면 금방 대답하면서도 “지금 무엇이 필요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참을 망설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면 “그래도 이것까지만 끝내자”라고 눌렀고, 혼자 있고 싶은 날에도 상대가 서운해할까 봐 약속을 잡았습니다.
누군가의 부탁이 부담스러워도 거절하는 것보다 제가 조금 더 힘든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괜찮다고 말해놓고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분명 제가 선택해서 한 일인데 마음 한구석에는 자꾸 서운함이 쌓였습니다. “나는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왜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지?”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해놓고 속으로는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비슷한가요?
하기 싫은 부탁에 “괜찮아요”라고 답한 뒤 집에 돌아와 후회한 적, 가족을 위해 기꺼이 한 일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던 적, 혼자 있고 싶지만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말하지 못했던 적,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적 말입니다.
욕구를 말한다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욕구를 말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걱정합니다. 좋은 사람이라면 타인을 먼저 배려해야 하고, 성숙한 사람이라면 웬만한 일은 이해해야 하며, 사랑한다면 조금 더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휴식·안전·존중·인정·연결·사랑·친밀감·자율성·성장·의미·소속감은 특별하거나 과도한 욕심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필요입니다.
욕구를 표현하는 것과 강요하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은 조금 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 “그 말은 불편했어요”라고 알려주는 것,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요청하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상대의 욕구와 조율할 수 있습니다.
표현하지 못한 욕구는 다른 모습으로 관계에 나타납니다.
욕구는 모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표현되지 못한 욕구는 다른 모습으로 관계에 나타납니다. 쉬고 싶은 마음을 오래 억누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이 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부끄러워하면 사소한 무시에도 크게 상처받습니다. 안전하고 싶은 욕구를 말하지 못하면 상대를 반복해서 확인하게 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계속 맞춰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관계 전체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서운함은 때로 상대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원했던 것을 말하지 못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분노는 내가 예민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지켜야 할 경계가 있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나약함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은 내 마음을 몰라줄까?”라고 생각하기 전에 저 자신에게 먼저 묻기 시작했습니다.
▶ 나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무엇을 원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을까?
이 질문은 때때로 아프지만 동시에 홀가분합니다. 상대가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욕구는 욕심이 아닙니다. 욕구를 알아차리는 순간, 관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생깁니다.
《 왜 가까운 사람에게 더쉽게 서운하고 예민해질까요? 》
이상하게도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웃으며 버텼는데 집에 돌아와 가족의 한마디에 화를 냅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은 잘 들어주면서 연인이나 배우자가 내 마음을 몰라주면 깊이 서운해집니다.
그리고 감정이 가라앉으면 다시 자신을 탓합니다.
“왜 나는 가까운 사람한테만 이럴까?”
문제는 마지막 한마디에서 터졌지만 그 말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늘 마지막 한마디에서 터졌지만, 사실 그 한마디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루 종일 참아온 피로, 거절하지 못한 부탁, 혼자 감당한 책임과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이미 몸과 마음에 쌓여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원인을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 관계에서 감정이 뒤늦게 쏟아졌던 것입니다.
좋은 대화법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관계가 어려워지면 우리는 더 좋은 대화법부터 찾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싸우지 않는지, 어떻게 거절해야 미움받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를 이해시킬 수 있는지를 배웁니다. 물론 말하는 방법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면 좋은 대화법을 배워도 정작 해야 할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달라져도 나의 반응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상황은 달라졌는데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늘 침묵하거나, 사랑받기 위해 지나치게 맞춰주거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상대를 확인하고 통제합니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거리를 두고,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갑자기 관계를 끝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왜 내 주변에는 늘 이런 사람만 나타날까?”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상대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계가 달라져도 내가 반복해서 선택하는 반응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갈등이 생기면 말하는 사람인지 침묵하는 사람인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자주 포기하는지, 사랑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는지를요. 가족 모임을 앞두고 이유 없이 속이 불편하다면 오랫동안 맡아온 ‘늘 이해하고 챙겨야 하는 사람’이라는 역할을 몸이 기억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목이 조이고 숨이 얕아진다면 그 조직에서 자신의 의견과 어려움을 안전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연인과의 연락이 조금만 늦어져도 불안하다면 상대의 연락 방식뿐 아니라 내가 관계에서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관계는 한쪽이 계속 작아지지 않는 관계입니다.
좋은 관계는 무조건 가깝고 오래된 관계가 아닙니다. 자신의 몸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해도 안전하고, 경계를 말했을 때 존중받으며,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한쪽이 계속 작아지지 않는 관계입니다. 때로는 더 가까워지는 것보다 적절한 거리를 선택하는 일이 관계를 오래 지키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관계는 ‘나와 나의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작은 실수는 오래 자책하고 있지는 않은지, 친구에게는 쉬어도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는 다음 목표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감정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불편함을 사소하게 취급하지 않는 것, 필요할 때 거절하는 것,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의 속도를 존중하는 태도에 더 가깝습니다.
BNR은 몸을 가지고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BNR은 여성의 몸과 섹슈얼 웰니스 현장에서 시작되었지만 여성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무언가를 원하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 책임질 일이 많아진 리더, 가족을 돌보는 부모,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연인, 달라진 몸을 마주한 중년과 노년까지 삶의 장면은 달라도 마음속 질문은 놀랄 만큼 닮아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할까?”
“왜 싫다고 말하지 못할까?”
“왜 가까운 사람에게 더 예민해질까?”
“왜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유독 지칠까?”
“나는 지금의 삶을 정말 원하는 걸까?”
BNR Salon은 이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내려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신의 몸과 감정, 욕구와 관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며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느꼈을까?’를 함께 탐구하는 자리입니다.
▶ 건강한 관계는 갈등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나와 상대의 욕구를 함께 존중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BNR Salon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함께 나눕니다.
지금 내 몸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그 신호 뒤에는 어떤 욕구가 있는가?
그 욕구는 관계와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가?
강연에서는 누군가의 정답을 외우기보다 자신의 몸과 삶에 질문을 건넵니다. 지금 몸에서 가장 힘이 들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최근 무엇을 참았는지, “괜찮아요”라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봅니다. 피로와 무기력, 비교와 조급함,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랑과 친밀감, 관계의 경계와 반복되는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여성의 생애주기와 달라지는 몸, 연인과 부부의 욕구 차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 일하는 사람의 번아웃과 조직 안에서 말하지 못한 욕구도 BNR의 관점으로 연결합니다.
BNR Salon은 몸과 관계를 진단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BNR Salon은 심리상담이나 의료 강연이 아닙니다. 저는 의료인이나 심리치료사의 위치에서 몸과 감정, 관계를 진단하지 않습니다. 여성·섹슈얼 웰니스와 유통·세일즈·마케팅 현장에서 발견한 인간의 욕구를 심리학·뇌과학·행동과학·여성 건강에 관한 공부와 연결해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BNR 커뮤니케이터입니다.
깊은 고백보다 안전한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성적인 이야기를 공개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분석하거나 해결책을 조언하지 않습니다. BNR Salon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깊은 고백이 아니라 안전한 질문입니다. 많은 지식을 기억하는 것보다 자동으로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기 전에 자신의 몸을 한 번 더 살펴보는 변화가 남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아직 연습하고 있습니다.
몸의 신호를 매번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도 아니고, 필요할 때마다 솔직하게 욕구를 표현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할 때가 있고, 혼자 감당하다 뒤늦게 지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동으로 “괜찮아요”라고 말한 뒤 한 번 더 묻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괜찮은가?’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이번에는 무엇을 다르게 선택할 수 있을까?’
관계를 바꾸는 일은 작은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관계를 바꾸는 일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피곤한 날 “나 오늘은 조금 쉬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 하기 어려운 부탁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해보는 것, 상대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 몸이 지속해서 보내는 불편을 참지 않고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이해의 목적은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이해의 목적은 과거의 나를 분석하거나 잘못을 찾아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애써야 했는지, 왜 괜찮은 척해야 했는지, 무엇을 원하면서도 말하지 못했는지를 조금 더 다정하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감정 뒤의 욕구를 인정할 때, 자동적으로 반복해온 반응 사이에 작은 틈이 생깁니다. 그 틈에서 이전과 다른 선택이 시작됩니다. BNR Salon의 다음 강연은 삶을 한순간에 바꾸겠다는 거창한 약속을 드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는 수없이 건넸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묻지 못했던 질문을 처음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지금의 피로와 무기력, 반복되는 관계와 말하지 못한 욕구가 마음에 걸렸다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더 잘해내는 방법보다, 더 이상 나를 놓치지 않는 방법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몸은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들을 차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어머, 이거 내 얘기잖아” 하고 멈춰 선 문장이 있었나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동안 자주 삼켰던 말이나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을 댓글로 들려주세요. “저도 괜찮다고 말했어요”, “저는 쉬고 싶었어요”라는 짧은 한마디도 충분합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좋아요와 댓글은 이 이야기가 누군가 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호가 됩니다. WACT Essay는 앞으로도 우리가 미처 배우지 못했던 몸과 욕구, 관계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BNR Salon 구경하기
???? BNR Salon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nr.salon/
???? BNR Salon 오픈채팅방
https://open.kakao.com/o/gbmth8Fi
※ 실명 가입 필수
#BNRSalon #HolisticWellness #WACT #왝트 #왝트에세이 #섹슈얼리티 #왝트이유정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