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욕구의 뇌|인정과 성공, 왜 받아도 부족할까?
최고평가를 받은 날, 수현은 퇴사를 검색했다
수현은 연말 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 대표는 전 직원 앞에서 수현의 이름을 불렀고 대형 화면에는 프로젝트 매출과 성장률이 떠올랐다. 동료들이 박수했고 후배들은 부럽다고 했다. 수현은 상패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에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열었다.
‘40대 퇴사.’
‘번아웃 증상.’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수현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더는 평가받지 않는 곳으로 잠시 사라지고 싶었다. 최고평가를 받은 날인데도 기쁘지 않았다. 이번 성과가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다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부족한 자신이 드러난다면, 사람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먼저 떠올랐다.
매슬로의 네 번째 단계인 존중 욕구(Esteem Needs)에는 두 방향이 있었다. 하나는 지위와 명성, 성취와 타인의 인정처럼 외부에서 확인되는 존중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유능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끼는 내부의 존중이었다. 외부의 인정이 내부의 존중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현은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둘은 비슷해 보였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욕구였다.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힘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치심과 타인의 실망으로부터 달아나는 힘이었다.
칭찬은 수현을 채우지 않고 다음 증명을 요구했다
충분한 성취를 이루고도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언젠가 부족한 실체가 드러날 것처럼 느끼는 경험을 가면 증후군(Impostor Phenomenon)이라고 했다. 수현은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 평가할수록 더 불안해졌다. 실력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닌지, 말을 잘해 유능한 사람처럼 보인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뇌의 보상 체계는 예상했던 것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학습했다. 기대보다 좋은 보상이 주어졌을 때 발생하는 차이를 보상예측오차(Reward Prediction Err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큰 칭찬과 성과는 처음에는 강한 기쁨을 만들었다. 그러나 반복되면 그것은 새로운 기준이 됐다. 어제의 최고평가는 오늘의 당연한 기대가 되었고, 같은 만족을 얻으려면 더 큰 성과가 필요해졌다.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도 멈추지 않았다. 수현이 승진하면 더 빨리 임원이 된 사람이 보였다. 집을 마련하면 더 좋은 지역에 사는 친구가 보였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더 사랑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에서 한 번 이긴다고 비교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더 높은 비교 대상이 나타날 뿐이었다.
수현에게는 높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있었다. 어려운 일을 맡아도 결국 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성과를 냈다. 그러나 자존감(Self-Esteem)은 성과에 조건부로 묶여 있었다. 잘하면 괜찮은 사람이었고 실수하면 존재까지 부족해진 것 같았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자신도 존중할 수 있는 감각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행사가 끝난 뒤 후배 지연이 수현을 찾아왔다.
“선배처럼 되고 싶어요. 일도 잘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연애도 오래 하는 사람이요.”
수현은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지연은 수현이 남자친구와 헤어질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도, 다른 남자의 관심 앞에서 흔들렸다는 사실도, 축하받은 밤마다 공허해진다는 사실도 몰랐다. 지연이 부러워한 것은 수현의 삶이 아니라 수현이 편집해 보여 준 장면이었다.
네 사람은 사랑보다 자기 가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재민이 찾아왔다. 그는 유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다시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현이 묻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수현이가 잘될수록 내가 작아졌어.”
재민은 수현의 성공을 축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수현 옆에 있을 때마다 자신의 연봉과 직책, 능력을 비교하게 됐다고 했다. 유나는 그런 재민에게 그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함께 일하면 든든하다고 했다. 재민은 유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유나 앞에서는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수현은 재민을 비난할 수 없었다. 자신도 민석 앞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민석의 시선 속에서 수현은 이해받을 가치가 있고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 됐다. 네 사람이 서로에게 끌렸던 이유에는 사랑만 있지 않았다. 상대의 눈을 빌려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은 인정 욕구도 있었다.
“우리 잠시 끝내자.”
수현이 말했다. 재민은 붙잡지 않았다. 현관을 나가기 전 수현에게 주었던 목걸이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이걸 고른 건 정말 수현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였어.”
문이 닫힌 뒤 수현은 회사에서 받은 상패와 재민이 남긴 목걸이를 나란히 바라봤다. 하나는 능력을 증명했고 다른 하나는 사랑받았음을 증명했다. 둘 다 오랫동안 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것도 수현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
다음 날 민석에게 최종 이직 제안이 왔다. 지금보다 높은 연봉, 더 큰 직책, 독립된 조직이 약속돼 있었다. 메일 마지막에는 개인적인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
‘그곳에 오면 수현 씨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수현은 답장을 쓰다가 손을 멈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 부모가 안심할 사람, 연인이 떠나지 않을 사람, 후배들이 부러워할 사람은 되어 왔다. 그러나 수현 자신이 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정이 선물이 아니라 갚아야 할 부채가 되는 순간
나는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랫동안 마케팅과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하며 좋은 의도만으로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실행하고 약속을 지키며 결과를 완성하는 일은 지금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였다. 그러나 성과가 사람의 전부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졌다. 잘한 일과 잘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면 실패는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의 결함이 됐다.
처음에는 성장하기 위해 일했지만 어느 순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일하기도 했다. 쉬면 뒤처질 것 같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 자신의 실패처럼 느껴졌다. 칭찬을 들으면 기뻐하기보다 다음에도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인정이 선물이 아니라 갚아야 할 부채가 된 것이다.
BNR Salon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말을 오래 따라가다 보면 그 아래에서 뜻밖의 감정이 나왔다.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기 싫은 두려움,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에게 증명하고 싶은 마음, 자녀에게 실패한 부모로 보이고 싶지 않은 수치심이 있었다. 성공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인정 욕구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노력과 존재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러웠다. 다만 누구에게 왜 인정받고 싶은지는 물어야 했다. 성장의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피드백을 원하는 것인지, 하찮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박수를 갈망하는 것인지 구분해야 했다. 같은 성취를 향해 달려도 출발점이 다르면 도착한 뒤의 감정도 달랐다.
수현은 민석의 제안을 거절했다.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 제안이 자신의 가능성을 향한 선택인지, 민석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수현은 노트를 펼쳐 한 문장을 적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잘하는 일은 많았고 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반면 원하는 일은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데 너무 오래 익숙해진 탓이었다.
성공은 높은 곳까지 데려왔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인정 욕구를 이해하고 나서야 수현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보았다. 성공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성공을 선택하는 동안 자신의 감각을 선택에서 제외해 왔다는 것이 문제였다. 성공은 수현을 높은 곳까지 데려왔지만 그곳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자아실현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만든 삶에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성공할까?”에서 “나는 왜 이것을 원하는가?”로 질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수현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원하던 것을 대부분 가졌는데, 나는 왜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을까?’
성공의 다음 단계에는 더 큰 성공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빠져 있던 삶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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