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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욕구의 뇌|사람은 많은데, 왜 내 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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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지만 아무도 수현을 몰랐다. 

재민은 수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식탁 위에는 와인잔 하나와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민석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재민은 집 안을 한 번 둘러봤다. 수현은 그 시선이 모욕적이라고 느꼈다. 동시에 자신이 유나의 소셜미디어를 샅샅이 살펴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불안을 비난하면서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직 때문에 통화했어.”

“새벽 한 시까지?”

“유나를 집에 데려다준 것도 일이었어?”

수현의 질문이 끝나자 침묵이 내려앉았다. 재민은 자신과 유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다만 수현이 요즘 자신을 조사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숨이 막힌다고 했다. 수현은 재민이 중요한 순간마다 설명하지 않고 입을 닫기 때문에 자신이 더 집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래서 누구도 사과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는 동안 상대의 상처는 가해자의 변명처럼 들렸다.

재민이 낮게 말했다.

“수현이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떠나지 않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그 말은 수현이 가장 듣고 싶지 않았지만 가장 오래 알고 있던 사실을 건드렸다. 수현은 재민을 사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재민을 사랑하는 일보다 재민에게 버려지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관계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 선택받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는 장소가 됐다.

사람들 사이에서 더 외로운 이유

며칠 뒤 수현의 생일이 찾아왔다. 회사 동료들은 케이크와 꽃을 준비했다. 단체 채팅방에는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고 소셜미디어에도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수현은 동료들과 찍은 사진에 문장을 남겼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 행복한 하루.’

사람들은 수현이 늘 밝아서 보기 좋다고 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 부럽다고도 했다. 수현은 모든 댓글에 하트를 눌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았다. 백 명이 생일을 기억했지만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매슬로의 세 번째 단계인 사랑과 소속의 욕구(Love and Belonging Needs)는 단지 주변에 사람이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았다. 중요한 집단과 관계 안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고,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도 쉽게 밀려나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이었다.

외로움(Loneliness)은 혼자 있는 객관적인 상태와도 달랐다. 자신이 원하는 관계와 실제로 경험하는 관계 사이의 간격에서 생기는 주관적 고통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이해받지 못하면 외로웠고, 혼자 있어도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반드시 외롭지는 않았다. 수현에게는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감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부족했다.

사회적 배제나 거절을 경험할 때는 배측 전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dACC)전측 섬엽(Anterior Insula)처럼 고통과 불쾌감의 처리에 관여하는 뇌 영역이 반응했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긴 생존 역사에서 집단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실제 위험이었다. 그래서 답장이 오지 않고, 모임에서 자신만 제외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몸까지 아픈 것처럼 반응할 수 있었다.

수현은 관계마다 다른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리더였고, 부모 앞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딸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분위기를 살리는 사람이었고 재민 앞에서는 이해심 많고 독립적인 연인이 되려고 했다. 모든 관계에 수현의 일부가 있었지만 수현의 전부가 있는 곳은 없었다.

관계를 지키려고 자신을 지웠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는 경향을 자기침묵(Self-Silencing)이라고 했다. 싫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서운해도 이해한다고 말하며, 원하는 것이 있어도 부담을 줄까 봐 감췄다. 갈등은 잠시 피할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은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알아서 알아주기를 기다렸다가 실망했고, 작은 행동을 사랑의 증거로 시험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차갑게 돌아섰다.

수현도 그랬다. 재민이 약속을 취소했을 때 이해한다고 했다. 연락이 줄었을 때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외롭다고 말하는 대신 재민의 접속 상태를 확인했고, 중요하게 여겨 달라고 말하는 대신 무심한 척했다. 재민은 수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고, 수현은 알아주지 않는 재민에게 실망했다.

그날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민석이 보낸 것이었다. 카드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괜찮지 않아도 되는 생일이기를.’

수현은 꽃보다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민석이 정말 좋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민석 앞에서는 자신이 자세히 바라볼 가치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때로 사람은 상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원했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재민이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안에는 수현이 오래전 갖고 싶다고 말했던 목걸이가 있었다. 수현은 기억해 줬다는 사실이 고마웠지만 기쁘게 웃지 못했다. 재민은 식탁 위의 꽃다발을 바라봤다.

“민석한테 받은 거야?”

수현은 이번에는 감추지 않았다.

“응.”

재민은 휴대전화를 꺼내 흐릿한 사진 한 장을 보여 줬다. 민석이 수현의 회사 앞에서 꽃을 맡기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멀리서 촬영한 사진이었다.

“유나가 보냈어.”

수현은 유나가 왜 민석을 촬영했는지 물었다. 재민이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

“유나는 민석의 전 아내야.”

수현은 네 사람이 서로 다른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민과 유나는 함께 일하고 있었고, 유나는 전남편 민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민석은 수현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을 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같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외로움은 자신의 진실이 누구에게도 도착하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의 수보다 관계의 온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연락처와 팔로워가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느라 진짜 감정을 감춘 사람은 군중 속에서 더 외로울 수 있었다.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진실이 누구에게도 도착하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었다.

BNR Salon과 강의에서 관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은 처음에 상대의 행동을 말했다. 배우자가 대화하지 않는다거나, 친구가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거나, 연인이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비슷한 두려움이 나왔다.

‘진짜 내 모습을 보여 주면 떠날까 봐 두렵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관계가 없는 것보다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는 일이 더 외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속감은 누군가가 완벽하게 알아봐 주는 기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서운하다고 표현하며,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어도 자신의 욕구를 관계 안에 가져와야 했다.

내 편은 모든 행동을 옳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꺼내도 빨리 결론 내리지 않는 사람, 불편한 진실을 말해도 곧바로 관계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사람, 때로는 듣기 싫은 질문도 정직하게 건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사건이 아니라 욕구를 말했다

수현은 재민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나는 유나 때문에만 불안한 게 아니야.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 그 말을 하면 더 초라해질까 봐 계속 화만 냈어.”

재민도 한동안 침묵하다 말했다.

“나는 수현이 옆에서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어. 그래서 유나가 내 의견을 필요로 할 때 좋았어.”

두 사람은 처음으로 사건이 아니라 욕구를 말했다.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관계가 곧바로 회복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상대의 행동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보이기 시작했다. 수현의 의심 아래에는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고, 재민의 침묵 아래에는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바뀌어 있었다

며칠 뒤 회사 최고성과자 발표에서 수현의 이름이 불렸다. 대표가 수현을 차기 임원 후보라고 소개했고 동료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사람들에게 속하고 싶었던 수현은 이제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상패를 받는 순간 기쁨보다 공포가 먼저 올라왔다.

‘다음에는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어느새 사람들에게 하찮게 보이고 싶지 않은 더 치열한 욕구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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