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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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욕구의 뇌 - 식욕과 성욕, 왜 채워도 또 당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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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8분, 수현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퇴근길에 파스타를 먹었고 집에 돌아와 와인까지 마셨으니 배가 고플 리 없었다. 냉장고 안에는 생수와 달걀, 유통기한이 임박한 요구르트, 며칠 전 재민과 먹다 남긴 케이크가 있었다. 수현은 케이크 상자를 꺼내 식탁에 앉았다. 첫입은 달았고 두 번째 입은 편안했다. 세 번째 입부터는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포크를 내려놓지 못했다. 맛이 없는데 계속 먹고 있다는 사실이 수현을 더 초조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배고픈 사람인지, 외로운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날 재민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했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이유였다. 수현은 이해한다고 답했지만 마음은 이해하지 못했다. 4년을 만나는 동안 재민은 점점 자신의 하루를 설명하지 않았다. 수현이 서운함을 말하면 재민은 피곤하다고 했고, 수현은 더 묻지 않는 것을 성숙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묻지 않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낮에는 업무로 덮였고 밤에는 음식과 술, 확인하고 싶은 충동으로 돌아왔다.

식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재민이었다.

‘오늘은 먼저 잘게.’

수현은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재민의 접속 상태를 확인했다. 먼저 자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온라인이었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수현은 케이크를 한입 더 먹었다. 단맛이 혀에 닿는 동안만큼은 재민이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그때 민석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민석은 석 달 전 브랜드 프로젝트에서 만난 컨설턴트였다. 회의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현의 성과와 숫자를 볼 때 민석은 수현의 표정을 봤다. 수현이 발표를 끝내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누르는 모습도 기억했다.

‘오늘 회의에서 계속 손목을 만지던데, 괜찮아요?’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감쌌다. 불안할 때 이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자신도 몰랐다. 재민과 4년을 만나는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을, 불과 몇 달 함께 일한 남자가 알아차렸다. 수현은 메시지 창에 ‘괜찮아요’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다시 ‘조금 피곤했어요’라고 썼다가 또 지웠다. 솔직해지는 일은 늘 생각보다 위험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약점을 넘겨주는 것 같았고, 외롭다고 말하는 순간 누구라도 자신을 함부로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수현은 짧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답장은 곧바로 왔다.

‘괜찮은 사람은 그렇게 오래 괜찮은 척하지 않으니까요.’

노골적인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수현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민석이 특별해서 흔들린 것인지,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을 너무 오래 굶었기 때문에 흔들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성욕을 신체적인 행동이나 자극적인 욕망으로만 이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현이 느낀 끌림은 훨씬 은밀했다. 누군가에게 자세히 관찰되고 싶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사람 앞에서 긴장을 내려놓고 싶었다. 몸의 친밀함보다 먼저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로 감지되고 싶었다.

배가 아니라 뇌가 기억한 허기였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였다. 음식과 수면, 호흡과 체온 유지처럼 생존에 직접 연결되는 기본 욕구였다. 신체적 친밀함과 성적 욕구 역시 인간의 몸에서 강하게 작동했다. 사람들은 식욕과 성욕을 서로 다른 문제로 생각했지만 수현의 몸에서는 두 욕구가 자주 비슷한 문장을 말했다.

‘지금 나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 달라.’

몸의 균형을 조절하는 중심에는 시상하부(Hypothalamus)가 있었다. 시상하부는 체온과 수면, 에너지 상태와 스트레스 반응을 살피며 몸의 상태를 일정한 범위 안에 유지하려 했다. 이를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했다. 위가 비면 그렐린(Ghrelin)과 같은 신호가 배고픔을 높이고,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렙틴(Leptin)은 저장된 에너지 상태를 뇌에 전달했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으라는 신호가 몸 안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수현의 야식은 위와 지방세포의 신호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실제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외로움, 관계에 대한 불안이 음식에 대한 욕구를 불러내고 있었다. 뇌는 과거에 단 음식을 먹었을 때 잠시 기분이 나아졌던 경험을 기억했다. 그래서 불안이 올라오자 가장 빠르게 위로받을 수 있었던 행동을 다시 제안했다.

도파민(Dopamine)은 흔히 쾌락을 주는 물질로 알려졌지만, 이미 얻은 만족보다 보상을 향해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동기와 학습에 깊이 관여했다. 무언가를 실제로 좋아하는 감각인 라이킹(Liking)과 다시 그것을 원하게 만드는 원팅(Wanting)은 항상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케이크가 더는 맛있지 않은데도 다음 한입을 집을 수 있었고, 관계가 편안하지 않은데도 그 사람의 메시지를 기다릴 수 있었다.

수현은 맛을 원한 것이 아니라 맛이 가져왔던 잠깐의 정지를 원했다. 민석이라는 사람을 충분히 알아서 끌린 것도 아니었다. 민석의 시선 안에서 자신이 중요하고 세심하게 살펴볼 가치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 감각을 다시 원했다. 욕구의 대상과 욕구의 원인은 같지 않을 수 있었다.

낯선 향과 뒤집힌 휴대전화

다음 날 아침, 수현은 재민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재민은 전날 약속을 취소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수현도 직접 묻지 않았다.

“어제 늦게까지 일했어?”

재민은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그렇다고 했다. 셔츠 소매가 움직이는 순간 처음 맡는 향이 희미하게 번졌다. 달고 차가운 향이었다. 수현은 착각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한 번 알아차린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인 재민의 휴대전화가 켜졌다. 화면에는 ‘유나’라는 이름과 함께 메시지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어젯밤 일은 수현 씨에게 말하지 않는 게….’

재민은 빠르게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수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커피를 마셨다. 목구멍이 바싹 말랐다. 어젯밤 먹은 케이크도, 와인도, 민석의 다정한 문장도 지금의 감각을 잠재울 수 없었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믿고 있던 관계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욕구의 대상과 욕구의 원인은 같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식욕과 성욕을 너무 빨리 의지의 문제로 판결한다고 생각했다. 왜 또 먹었는지, 왜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했는지, 충분히 채운 것 같은데 왜 다시 당기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절제하지 못한 자신부터 비난했다. 하지만 음식이 당겨도 필요한 것은 휴식일 수 있었고, 특정한 사람이 당겨도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위로와 친밀함, 발견되는 감각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욕구가 올라오는 순간 필요한 질문은 “왜 또 참지 못했을까?”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라고 물어야 했다. 편안해지고 싶은지, 누군가에게 중요해지고 싶은지, 외로움을 끝내고 싶은지를 알아야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다. 욕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모두 허락하는 일도, 무조건 억누르는 일도 아니었다. 몸이 대신 말하고 있는 진짜 문장을 듣는 일이었다.

수현은 케이크 상자를 닫았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케이크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욕구의 정체가 보이자 그 아래에 숨어 있던 다른 욕구가 훨씬 선명해졌다.

재민을 사랑하는지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이 관계에서 안전한가.’

그때 회사에서 조직개편 공지가 도착했다. 수현의 부서는 해체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연애와 직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두 개의 세계가 같은 날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의 허기가 조용해진 자리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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